교회의 권력

기이한 침묵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을 처리하려던 정부·여당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가로막은 것은 개신교였다. 이슬람채권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하자 개신교계는 '대통령 하야' '국회의원 낙선운동' 발언까지 내놓으며 정치권을 위협했다. 개신교의 반발에 부딪힌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숨죽였다. 이슬람채권법 국회 처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은 물론, 개신교의 공세에 맞서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민주당 역시 사태를 외면했다. 개신교의 정치적 행태나 여기서 비롯한 정교분리 논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사립학교법 등과 관련해 개신교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트라우마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슬람채권법과 관련한 개신교의 반발, 이에 대한 정치권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목사)은 최근 사태를 "현대판 카노사의 굴욕"에 빗댔다. 이명박 대통령 등 정치권력이 조용기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으로 대표되는 교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뜻이다. '카노사의 굴욕'이란 1077년 1월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성으로 찾아가 용서를 구한 사건이다. 세속권력이 교회권력 앞에 굴복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선거법으로 어쩌지 못하는 목사님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 혹은 교회와 정치인의 관계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A 전 의원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386세대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는 2008년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수백 표의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득표율로 따지면 1% 정도 차이였다.

개표함을 열어본 뒤 A 전 의원의 캠프가 받은 충격은 컸다. 투표함이 설치된 40여 개 투표구에서 A 전 의원은 상대편 후보와 박빙을 이뤘다. 이긴 곳이 더 많았고, 지더라도 100표 내외로 차이가 갈리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수백 표 차이로 낙선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B교회였다. B교회는 신도 수나 예배당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교회에 속한다. 이런 B교회가 속한 투표구와 이웃한 투표구에서 상대편 한나라당 후보에게 무더기 표가 나왔던 것이다. 여기서 수백 표 차이가 벌어졌고, A 전 의원은 끝내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후보는 B교회의 집사를 맡고 있었다.

A 전 의원 쪽에서는 2008년 총선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목사님 설교만 들어봐도 B교회가 완전히 한나라당 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되면 빨갱이 나라 만든다, 민주당 찍으면 빨갱이 찍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공개적으로 하는 거다. 투표 당일에도 새벽기도회를 연다며 신도 수천 명을 모아놓고 투표를 독려했다. 대형 교회가 이런 식으로 특정 후보에게 네거티브로 나오면 치명적인 거다.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당 교회 목사의 설교가 특정 후보에게 쏠려 있다면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A 전 의원 쪽은 "그런 대형 교회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걸었다가 다시는 그 지역에 발을 못 붙이게 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조용기 원로목사 등에게 막말을 들은 뒤 조용히 이슬람채권법을 포기한 이유도 A 전 의원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당장 내년 4월 또다시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지는 것이다. 이슬람채권법 해당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슬람채권법 처리는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며 "대부분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고 자기 지역에 대형 교회 한두 곳 없는 의원이 없을 텐데, 개신교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가 앞장서겠느냐"고 말했다.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2007년 7월30일 발표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종교지도자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개신교·천주교·불교 지도자 각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종교'로 꼽힌 것은 단연 개신교였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7%)이 개신교를 선택했고, 천주교(30.9%)와 불교(20.4%)가 뒤를 이었다.

개신교 인구 18.3%, 의원 40%

교회가 현실 정치에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이 '믿습니다' 현상이다. 2008년 제18대 국회가 출범할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개신교인은 약 40%에 해당하는 119명(2008년 4월22일 현재)이라고 발표했다.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은 유일한 목사였고, 장로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김성순 민주당 의원 등 11명이었다. 권사와 집사는 54명이었다. 17대 국회 때는 개신교 국회의원이 103명(34.4%), 천주교 70명(23.4%), 불교 34명(11.4%)이었다(각 교계별 집계).

반면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 가운데 각 종교별 신자 비율은 불교 22.8%, 개신교 18.3%, 천주교 10.9%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 가운데서는 불교 신자가 가장 많지만,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개신교인 비율이 크게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를 치르다 보면 지역구에 있는 대형 교회에 잘 보이기 위해 교회를 옮기는 일은 다반사이고, 천주교 세례명까지 받은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개신교 신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G 의원 등이 지역구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주차관리 요원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는 정가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서울 강남의 소망교회에서 종종 주차 봉사를 했다. 교회 앞마당에서 직접 교인의 주차를 돕는 이들의 행위를 보는 시각은 물론 다양하다.

오세훈 시장의 마지막 의지처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도드라지다 보니 정치인이 먼저 교회를 찾아가 머리를 굽히는 사건도 종종 벌어진다. 오세훈 서울시장 이야기다. 오 시장은 최근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무상급식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가 제안한 전면 무상급식 폐지를 위한 주민투표가 실제로 이뤄지려면 서울시 유권자의 5%인 약 41만8천여 명으로부터 주민투표를 진행해도 좋다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가 서울 유권자를 대상으로 무상급식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오 시장의 고민은 무상급식 폐지 주민투표가 실제로 이뤄진다 해도 결과가 과연 '무상급식 폐지'로 나올지 여부다. 그보다 더 급한 문제는 일단 서울시민 41만8천여 명으로부터 주민투표 청구 서명을 받아내는 일이다. 서명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주민투표 자체가 물 건너간다. 시민에게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여론을 묻자고 제안한 뒤 오 시장이 최근까지 활발하게 찾아다닌 곳은 대형 교회와 개신교 단체, 그리고 개신교 행사였다.

실제로 오 시장은 지난 2월6일 조용기 목사가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았다. 서울시에서는 별다른 의미 없는 방문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이 자리에서 오 시장은 조 목사 등에게 무상급식 반대 서명운동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월8일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가 서울시로부터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시행을 위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를 받았다. 조 목사는 이 단체에 상임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2월25일에는 한기총 임원회의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 시장은 이날 외빈인사 시간을 빌려 "민주당에서 여론을 선도하기 위해 무상 포퓰리즘을 시작하며 첫 작품으로 무상급식이 나왔다"며 "이미 무상급식 반대 이유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잘 아는 여기에 계신 분들께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기총에 대한 오 시장의 SOS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재철 한기총 수쿠크대책위원장(목사)은 "오 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해달라고 요청한 뒤 우리도 내부적으로 회의를 가졌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일일이 입장 표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또 오 시장의 한기총 방문 경위에 대해서도 "우리가 방문을 요청한 적이 없고, 본인이 찾아오겠다고 해서 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오 시장 쪽에서는 이날 초청을 받아 한기총을 찾았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 밖에도 2월2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영훈 회장 취임 감사예배에 참석하는 등 최근 개신교 관련 행사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 청구 서명운동과 주민투표를 위해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다.

"2100억원 교회 건축에 회계장부 없어"

개신교로 대표할 수 있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는 교회의 성역화로 이어졌다. 대형 교회와 유명 목사가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세법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 기준은 없다. 세무 당국에서는 그저 해왔던 대로 종교에 세금을 물리지 않고 있다.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종교법인법을 통해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법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정치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2007년 대선 때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종교법인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전부다. 대형 교회 등 종교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 건립할 수 있도록 허가한 대형 '사랑의 교회' 사례로 말문을 열었다. "총사업비 2100억원 규모의 교회를 짓겠다고 하는 사랑의 교회조차 아직 제대로 된 회계장부를 쓰지 않고 있다. 수천억원 단위의 재정이 오가는데, 용돈기입장 수준의 금전출납부를 쓰는 현실이 말이 되나. 목사에게 세금을 물리느냐 여부를 떠나 교회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시급한 과제다."

남 사무국장 등의 주장이 당장 정치권에 통할 가능성은 없다. 정치인이 종교법인법의 당위성을 언급한다는 것은 곧 '낙선운동'도 함께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 때문이다.

개신교 단체나 지도자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정치인의 입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언제든 '정교분리'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이슬람채권법이 물 건너간 사태가 그랬다. 정부·여당이 법안 통과를 미룬 배경에는 개신교계의 반대 이외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2항의 내용은 이렇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종교인도 선거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건 정당하다. 특히 "그것이 권력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섬김의 활동이 될 때"( < 정치교회 > , 김지방 < 국민일보 > 기자) 그렇다.

"정교분리 논란 넘어 직접적인 기득권 챙기기"

문제는 한국 개신교 단체와 지도자의 정치적 행동이 소외된 이들을 향하기보다 점점 근본주의적 색채를 띤다는 사실이다. 근본주의란 어떤 가치나 원칙에 입각해서 자신의 체계를 세우고, 그 체계의 눈으로만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개신교계는 이슬람채권법 사태에서 정교분리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 다른 어떤 부문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정치권도 이런 개신교계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정교분리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인 3월3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무릎기도'로 또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이슬람채권법에 반대하며 몇몇 개신교 단체와 지도자가 내놓은 발언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태희 성복교회 담임목사는 2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기독인회 조찬기도회에서 "이슬람채권법이 통과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말했다. 이틀 뒤인 24일 조용기 원로목사는 "이슬람채권법이 통과되면 그것을 통해서 지하드도 할 수 있고, 종교를 펼칠 수가 있다"며 "이슬람 지지하는 사람이 나오면 기독교인들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위한 기도시민연대'라는 이름의 보수 개신교 단체도 3월1일 성명을 통해 "이슬람의 국내 진출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쿠크법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대주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대체로 '이슬람은 폭력종교'라는 식의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슬람은 곧 적이고,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대항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 만약 이를 막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과격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개신교 근본주의는 공격성을 띤다. 최근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개신교인의 사찰 '땅밟기'가 대표적이다. 개신교인의 사찰 땅밟기는 지난해 6월 서울 강남 봉은사 땅밟기에 이어 대구 팔공산 동화사 땅밟기 등으로 이어졌다. 개신교인 사이에서 땅밟기 기도는 "사탄에 대적하는 영적 싸움" "그 땅을 밟으면서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고 주님의 나라임을 선포하는 것" 등으로 알려졌다. 땅밟기 파문 역시 '개신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근본주의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 근본주의는 교회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논리로 작동하기도 한다. 최근 사례로는 대구시가 팔공산 역사문화공원 사업을 접은 것이 꼽힌다. 대구시가 팔공산 초조대장경 유허지에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이 사업은 정부로부터 3대 문화권 선도사업으로 선정되며 대규모 국비를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역시 문제는 개신교계의 반대였다. 대구시는 결국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김용구 대한불교조계종 홍보팀장은 "대구시 역사문화공원 사업은 불교계의 요구와 관계없이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는데, 개신교계에서는 '사업 부지 안에 사찰과 초조대장경이 있으니까 이건 불교테마공원'이라는 식으로 반대해 결국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이 삭감된 것도 마찬가지로 개신교계의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 김 팀장은 "템플스테이 사업 역시 우리가 정부에 요구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불교계에 제안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자 더욱 감소할 위기를 자초해

근본주의 경향을 점점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한국 정치에도 불행이지만 개신교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당장 드러나는 현실은 개신교 신자의 감소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개신교 인구는 10년 전인 1995년보다 14만4천 명이 줄어든 861만6천 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개신교가 대외적으로 '1200만 신자'라고 강조한 것과 너무도 다른 결과였다.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은 개신교 근본주의가 개신교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안티 기독교운동은 개신교 근본주의가 자초한 현상이다. 개신교 근본주의가 '민족의 복음화'를 외치는 동안 안티 기독교 진영에서는 '기독교의 박멸'을 외치고 있다. 안티 기독교운동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도 개신교 근본주의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차원의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

조용기 목사, 하야 발언 속사정
순복음교회 지키려는 성동격서


조용기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는 발언을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평소의 조 목사는 다른 문제적 개신교 지도자와 달리 비교적 정제된 발언을 해왔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 하야'라는 극단적 발언을 한 배경은 다른 데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진보 성향의 개신교 단체인 '성서한국' 황영익 이사(목사)는 개인 블로그 '평화의 노래'에서 조 목사의 대통령 하야 발언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황 이사는 2월25일 '조용기 목사 발언 속내와 배경'이라는 글을 통해 조 목사의 발언은 "이슬람채권법의 하자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라기보다 근본주의적 배타주의에 입각하여 문제를 쟁점화하는 발언"이라고 전제한 뒤 "평소 속 깊은 계산을 하고 행동하는 분이 격에 맞지 않는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낸 데에는 순복음교회 내외의 상황 및 현 정세와 밀접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 < 국민일보 > 사태와 순복음교회 음해 글 살포 사건 등으로 지난 몇 개월간 (순복음)교회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조 목사의) 이러한 극단적 발언에는 자신의 영향력을 내외에 과시하고 < 국민일보 > 사태로 분열된 교회 내부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언의 파장이 커지고 자신과 개신교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수록 개신교권 내에서 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순교자적 지도자로 이미지가 강화된다."

< 국민일보 > 사태란 < 국민일보 > 발행인 자리를 놓고 조용기 목사 일가끼리 벌인 크고 작은 분쟁을 가리킨다. 이와 맞물려 지난해 말 순복음교회를 비방하는 < 비평과 논단 > 이란 책자 형태의 자료와 이를 홍보하는 전단지가 전국에 뿌려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황 이사는 아울러 "존경할 만한 발언과 행보로 기독교인을 바른 길로 안내해야 할 분이 시대착오적 기행으로 유치한 논란의 중심부에 섰다"며 "(조 목사는) 모두가 공감하는 말씀을 해야 할 것"이라고 글을 마쳤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역시 "조용기 목사의 이슬람채권법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직접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을 겨냥해 하야를 운운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며 "현재 순복음교회 안팎의 상황을 볼 때 조용기 목사가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그의 대통령 하야 발언과 맞물려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by dave kopi | 2011/03/12 10:13 | 술권하는 사회 | 트랙백 | 덧글(0)

"한국의 커피 문화 독특해"


"하루 하나의 카페베네를 보지 않으면 히키코모리(방에 틀어박혀 사회와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라는 설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번식력' 1위인 카페베네를 조롱하는 한 누리꾼의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우스개가 아니다.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 본 커피전문점을 세어보라. 카페베네뿐 아니라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커피전문점 하나쯤 안 보고 길을 지나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에서 지하철 2호선 신촌역까지 10분 남짓 걷다보면 보이는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은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언제나 붐빈다. 물론 신촌만의 '특이 현상'은 아니다.

커피전문점 열풍의 시작은 스타벅스였다. 1999년 이대점을 필두로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줄곧 커피전문점 시장을 주도했다. 스타벅스는 유행에 민감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점포 수를 늘려나갔다. 마케팅과 문화적 관점에서 스타벅스를 분석한 책도 쏟아졌다. 성공을 확인한 후발 주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김재연 인턴기자 한국의 커피전문점에는 카페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카페브러리족이 유난히 많다.

2009~2010년 경기 침체 속에서도 커피 시장의 성장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최근 커피전문점은 번화가뿐만 아니라 주택갇서정대형마트·휴게소 등 생활밀착형 공간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제 누구도 커피전문점에 가는 사람을 '된장녀'라고 비하하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커피전문점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이 되었다. 스타벅스·엔제리너스 등 상위 4개 커피전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5000억원에 이른다.


커피가 위 속으로 떨어지면…


세계무역 시장에서 석유 다음으로 거래가 활발한 품목인 커피는 매년 전 세계 인구가 6000억 잔을 소비하는 '인류적 기호식품'이자, 인류가 사랑하는 음료다. 일찍이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 현대 자극성 음료에 대한 논문 > 에서 "커피가 위 속으로 떨어지면 모든 것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전장의 기병대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기억은 기습하듯 살아난다. 작중 인물은 즉시 떠오르고 원고지는 잉크로 덮인다"라고 썼다. 7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는 동안 그는 5만 잔에 이르는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철학장 폴 사르트르는 커피전문점 애호가였다. 그는 평생 연인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파리 시내 '카페 드 플로르'의 소음과 담배연기 속에서 글을 썼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7~18세기 유럽의 커피전문점이라 할 수 있는 커피하우스 역시 당시로서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당시 유럽 곳곳에 3000여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런던만 해도 1663년 82개에 불과했던 커피하우스가 겨우 7년 만인 1700년 500여 개로 증가한다. 커피하우스는 계층의 구분 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고, 정보를 공유하며 토론하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당연히 토론과 대화가 억압된 사회에는 커피하우스도 없었다. 옛 소련 시절, 모스크바에 커피하우스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오늘날 커피전문점의 증가 역시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갈증, 즉 '사회적 관계' 욕구로 해석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해 펴낸 <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 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하나로서 '커피의 시대'를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 책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혼자 방문하는 경우는 14%에 그치지만, 친구·동료·연인 등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경우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의 절대다수는 '커피 가격이 비싸다(86%)'고 생각한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커피의 맛과 가격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장소로 커피전문점을 소비하고 있다고 분석 할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 연세대 정문에서 신촌 전철역까지 10분 남짓 걷다보면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이 즐비하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학원가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은 전형적인 '사랑방' 구실을 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네거리 스타벅스 대치점이 입주한 건물 위층에는 각종 학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아르바이트생은 "30~40대 아주머니들이 학부모 모임 하러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 모임이 잦은 학기 초가 되면 미리 자리를 예약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학부모가 다른 학부모와 함께, 혹은 학원 강사들을 만나 사교육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주요 장소가 커피전문점이 되면서 '아카데미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커피전문점, 집과 직장에서 해방된 공간


커피전문점은 사랑방이 아닌 '개인 놀이터'의 기능도 수행한다. 한국 커피 시장에 관심이 많은 앨런 쿠페츠 교수(미국 롤린스 대학 크라머 경영대학원)는 지난해 여름 < 파이낸셜 뉴스 >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커피 문화는 독특하다. 한국인에게 가정은 가족이 머무르는 곳이고, 직장은 생계를 위한 공간이다보니 커피전문점이 집과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는 제3의 장소로 기능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뛰어난 인터넷 접속 환경을 주목하며 한국의 커피전문점이 앞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커피전문점을 '제3의 장소'로 바라본 그의 분석 틀을 빌리면 사무실 밀집지역의 커피전문점 주요 고객인 '코피스족(coffee+office:카페를 일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과 대학가 커피전문점 주요 고객인 '카페브러리족(cafe+ library:카페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사람들)'이 설명된다.

한 대학가에 있는 3층짜리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책을 읽던 대학원생 하창주씨(27)는 "커피 값으로 5000원 정도만 지불하면 몇 시간이고 무선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공간이 크다보니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작업(공부)하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러한 소비자의 필요를 반영해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도 늘어나고 있다. 24시간 영업 매장인 탐앤탐스 홍대점의 경우 매출의 절반 정도가 야간 시간에 발생한다. 홍대 앞이라는 매장 위치의 특성상 프리랜서와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일본 메이지 대학 문학부)는 <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에서 "커피는 '잠들지 않는' 근대의 원동력이다"라고 정의한다. 술은 마시면 잠이 오지만, 커피는 마시면 잠이 깬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커피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상시적 고용 불안의 시대, 그나마도 취업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 요즘. 커피전문점의 증가가 커피라는 음료가 가진 느낌처럼 '낭만적'일 수 없는 이유다.

장일호 기자

by dave kopi | 2011/03/02 14:39 | 트랙백 | 덧글(0)

그림자를 지우며

길상사에 와서 지낸 지 두 해쯤이 되어가는 마당에 절을 떠나게 되었다.  

  길상화 보살님의 불심과 회주 법정스님의 고결한 정신이 깃든 도량, 현대의 도심 생활에 쫓기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활로를 열어 주어야 할 큰 절의 주지 소임을 임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순수한 희망으로 배움과 수행의 길을 같이하려 했던 많은 어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인연을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인생들이다.  우리 모두가 내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거룩한 승가공동체에서 다 같이 성불의 여정을 가는 존재들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길에서 우리는 그 누구와도 영원을 기약할 수 없다. 때론 만남과 공존의 기쁨에 젖고, 때론 헤어짐과, 같이 하지 못하는 슬픔에 좌절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무상의 이치요 생사의 줄거리이다.  옛 부처님도 이렇게 가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언젠가는 다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있었고, 지금은 설령 법정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

  머무는 동안은 물론 스님의 원을 받들어 안팎으로 조금이나마 더 맑고 향기로운 가람을 만들려 했고, 화합하는 청정승가를 이루려고 했으며, 전법과 수행의 도량을 일궈가려 했다. 처음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적지 않은 반대와 온갖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며 소신껏 노력하여 도량을 정비하고, 옛 모범과 시대적 요구 사이에서 중도적 통일을 꾀하며 사중 운영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하여 차근차근 틀을 다져왔다.  그 사이에 스님의 입적을 당했으나, 길상사는 스님이 남기신 유지를 그대로 지키기 위해 사부대중이 합심하고 성심을 다해 노력하여 도량 내외의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와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산중의 한거(閑居)에나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도심의 도량에 나앉아 너무 많은 일을 다뤄야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으며 너무 크고 복잡다단한 요구와 주문들에 끝없이 시달려왔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욕심과 야망,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我相)들이었다. 

  승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세속의 현란한 물신풍조, 가치 혼란, 정보통신 기술의 방향없는 질주......  온갖 것들이 청정한 승단에 존폐의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의 정치발전 과정에서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은 시스템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 액면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성원들이 충분히 교육되고 정화되어 선의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소수 탐욕과 이기적 야망을 숨긴 정치꾼들의 다수 대중에 대한 기만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공동체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성공적으로 지켜져 온, 그러면서도 가장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불교의 승가공동체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물론 부처님 가르침의 진리성이다.  그 진리가 우리를 일깨워 나 없음을 깨닫게 하고 무욕의 삶을 살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귀의,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결실로서 우리가 누리는 진실한 자유와 행복이  무소유와 무집착의 수행자들로 이루어진 승단을 2600여년이나 지켜온 것이다. 

  법이 있고 계율과 청규가 있고, 법을 먼저 닦고 이룬 스승들이 있으며, 소임과 직책의 수평과 수직관계가 가장 아름답게 짜여진 조직력이 있는 승가에 무엇이 부족하여 혹을 붙여 불구를 자초할 것인가?  종교공동체에 정치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그 순수성은 흔들리고 오염되기 시작한다. 

  가는 사람 말이 구구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떠나는 마당에 진심으로 우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본분과 소임을 다하며 묵묵히 구도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에 안간힘 쓰기보다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어떤 사람도 영원히 한 곳에 있을 수 없고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러나 차지한 사람이 바뀌고 모든 것이 변화 속에서 흘러가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우리가 누구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나는 맑고 향기롭게의 몇몇 임원들이나 길상사나 맑고 향기롭게 안팎에서 나와 선의를 가진 불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거의 없다. 이 무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각을 이룰 것이다.

 뜻을 얻으려 하는 자는 욕망을 버려야 하고 세상을 얻으려는 자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
 어서어서 무변의 봄꽃이 피는 마음고향에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지나며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갈라놓고 그대를 영원하지 않은 쪽에 집어던지기 전에......




                                                         2011년 2월 20일 덕 현

by dave kopi | 2011/02/22 11:05 | 술권하는 사회 | 트랙백 | 덧글(0)

사랑해

투명한 봄햇살이 누리에 가득하다. 새벽달은 그냥 예처럼 밝았다.

몸살이 나서야 조금 생긴 여유. 그러나 도량 거니는 발걸음 헛헛해라.

담벼락의 투박함 뒤에 숨어 있다 꽃봄의 문을 여는 영춘화(迎春花)의 놀라운 웃음. 문득 눈이 뜨인다.

아, 스님도 그랬었구나.

서슬이 죽지 않은 크리스탈처럼, 끌리지만 만질 수 없는 사람이었으되,

문득 가슴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온 영혼을 열어 함께 피던 꽃이었구나.

 

모퉁이 돌아서면, 스님처럼 사람 없는 곳에서 더 빛나는 이 매화의 고졸함이 있다.

스님은 섬진강가 마을 먹점골 매화가 제일 좋다고 그 청매 꽃그늘에서 차를 드시기도 하셨었지.

담장 밑 조금 낮은 곳에는 5월의 영광을 미리 준비하는 모란의 불그레한 새 순들이 또 눈에 띈다.

가을 녘에 남쪽 암자에 내려와 손수 전지가위를 들고 잎 지고 난 모란 가지들을 다듬으시곤 했던 스님.

난 스님의 말씀을 따라 추위 타는 겨울 모란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큰절에서 톱밥을 얻어다가 이불처럼 밑동 주위에 둘러 덮어주었었다.

 

그렇지만 이제, 꽃이 다 뭐란 말인가. 봄날에 가시겠다던 약속을 끝내 당신은 지키셨지만,

그리움만으로 남겨진 자들에게는 이토록 밀물지듯 엄습해오는 봄이란 그저 가슴 아리게 여울져오는 처연함일 뿐.

이 세상의 눈부신 것들을 당신이 앓으셨듯이, 그렇지만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이 덧없는 세상의 꽃들을, 더불어 이 쓰라리고 노여운 담벼락이나 썩은 것들을 다 껴안아야 하는 것인가?

어떤 때는 다 없었던 것처럼 참고, 어떤 때는 햇살 같은 다사로움으로 기다려 녹이고,

어떤 때는 달빛의 검광(劍光)으로 물밑을 뚫어야 하는가?

자신이 없다.

 

일제치하, 한국동란, 군부독재, 급격한 산업화......,

모든 것이 굴절되는 어둠의 시대를 스님은 한 생애를 던져 투과하며 화살처럼 곧게 날아가셨고,

색깔 없는 수행자의 옷을 입고 가장 깊은 은자처럼 살면서도 세상을 그토록 내밀하게 열애하셨으니,

가장 높고 어려운 것을 가장 단순하고 쉽게 말하고, 말보다 행으로, 행보다 존재로 먼저 드러내 보이셨으니,

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외로움의 지존과 청정함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셨으니,

도대체 누가 또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것이 비록 부처님이 정하신 가장 멋진 주인공의 배역이라 해도 이제 누가 있어 그 험한 역을 맡으랴.

 

길상사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

그들의 가슴은 슬픔과 기쁨의 터치에 더 예민하게 떨도록 조율된 악기의 현처럼

마치 누군가의 연주를 다시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그 연주자의 자리는 비어있다. 아무도 감히 앉으려 하지 않는다.

 

‘맑고 향기롭게’는 이제 그 언표(言表)만으로도 사람들의 가슴 한 가운데 떨어져

세상 가장 가 쪽까지 퍼져가는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처음 수면 위에 떨어진 그 돌멩이는 이미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악기의 조율은 얼마나 쉽게 어그러지고, 수면 위엔 얼마나 많은 바람이 부는가.

꽃은 얼마나 빨리 지고 마는가.

 

낮은 길어졌지만, 하루는 더 빨리 저문다. 저녁 북소리도 공허하다.

몸살감기 덜 떨어진 목소리로 예불 마치고 법당을 나선다.

아, 그런데...... 별이다. 어둠 속에서 승천한 꽃들이다. ......

어쩌면 저 산 능선 위로 막 돋은 별이 스님 별이다. 눈빛이 닮았으니.

 

스님은 병원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잠겨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먼 땅에서 눈에 막혀 아직 오지 못하고 있는 어느 영혼을 부르며 말했었다.

“사랑해.”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그 표현은 스님 입에서 나온 최초의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

나는 스님이 들고 있는 수화기의 저쪽에서 전해오는 그 영혼의 떨림을 감지했다.

어느 해 여름, 찾아온 몇 사람에게 스님은 좌선을 가르쳐 주셨었다.

그 설명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었다.

그러나 스님은 낮엔 사람들에게 꽃을 보여주셨고 밤엔 평상을 마당 한 편에 꺼내놓고 별을 보게 하셨다.

그 중엔 그 영혼이 끼어 있었다.

까맣고 높고 광막한 어둠에, 빛나는 빗금을 긋는 유성을 보고 탄성을 지르던 그 영혼이 물었었다.

“스님, 우주의 끝이 어디예요?”

“우주에 어디 끝이 있겠어? 저 무한한 우주에......”

그 대답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문학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영혼들에게 별을 보여주셨고 영혼들은 오래 그 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은 열리어, 자신들이 어둠 속에서 잠든 꽃송이임을,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지고 나면 곧 하늘의 별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것을 아마 깨달았을 것이다.

그 여름이 저물어 가을이 되고,

가을 암자를 지키며 흩날리는 낙엽을 치우다 지쳐가는 햇중에게 스님은 편지를 보내며 그 끝에 이렇게 쓰셨었다.

“낙엽 치다꺼리에 고생이 많겠다. 잎 지고 빈 가지 끝에서 새 봄의 싹을 찾아보아라.”

 

봄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스님에게 난 한 가지 봄꽃을 꺾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잎 돋지 않은 나무 가지 사이로 흔들리는 별들, 그 속에서 스님의 사라진 기침소리와 호흡을 본다.

별이 내려 꽃이 되고 떨어진 꽃들은 하늘에 올라 별이 된다.

우리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꽃과 별을 보는 그 눈빛이 되는 일이다.

때론, 꽃이 되고 별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보여지는 나’가 되는 일이다.

 

 

덕현스님(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근본도량 길상사 주지)

by dave kopi | 2011/02/22 11:04 | 술권하는 사회 | 트랙백 | 덧글(0)

지원이에게

지원아 미안하다.
지금까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미칠만큼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지원아
어른들이 그러더라 건강하게만 자라면 된다고....
하지만 아빠는 그말 믿음이 안가더라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20시간 비행기 내내 아무것도 먹지못하고 울기만 했다는 이야기 듣고
이제야 알겠더라

지원아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아빠는 지금가지 살면서 여러사람에게 아빠나름대로 많지는 않지만 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아빠가 줄때마다 머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항상 되돌아올 뭔가를 바라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너에게는 다 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바라고 싶지않다.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생활해준다면... 니가 힘들지 않다면... 아빠를 생각하지 않아도 고마워하지않아도
영원히 아빠를 보려하지 않아도 아빠는 괜찮다.
아빠를 서운하게해도 되고 친구만난다고 전화안해도 되고 공부 못해서 야단맞아도 되고...
제발 니가 더이상 눈물흘리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

너에게 아빠가 어떤존재였는지도 아빠는 지금까지 모르고 산것같다.
20시간동안 보고싶다고 울 정도로 너에게 아빠가 소중한 존재였는지 모르고 살았다.

미안하다. 아빠도 지원이 만큼은 아니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쉽지가 않다
사랑한다

by dave kopi | 2009/08/11 09:53 | 술권하는 사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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